통신비밀보호법, 모르면 불법 녹음 (Feat.아이폰보다 갤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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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거래를 많이 하거나, 금전 거래를 활발히 하거나, 누군가와 법적 다툼을 진행하고 있다면 갤럭시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만약 아이폰을 사용한다면 갤럭시로 바꾸길 권한다.)

아이폰에는 없는 ‘통화 중 녹음 기능’이 갤럭시 폰에는 있기 때문이다. 녹음된 통화 내용은 차용증, 진술서만큼 강력한 증거 능력을 갖는다.

‘상대방 모르게 비밀스럽게 통화 녹음 한 것인데 괜찮냐’는 의문이 있다면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에 대해 알아보는 것을 권한다.
녹음 행위에 따라 어떤 경우는 불법이고 어떤 경우는 허용되는 것인지 구별할 수 있다.

통신비밀보호법과 초원복집 사건

통신비밀보호법을 논하기 전 1992년에 쟁점이 되었던 ‘초원복집’이야기를 조금 해볼까한다.

당시는 대선을 열흘 앞둔 시점.
정주영 후보 측에서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는 여러 인사들이 부산의 초원복집에서 모인다는 것을 알고 몰래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

불법 감청 중인 남자


감청 대상자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경쟁 후보를 비방하는 모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파악했다. 이 도청 내용은 고스란히 녹음되었고 언론에 퍼졌다. 이 사건은 대선을 앞두고 큰 화제가 되었다.

이 당시는 통신비밀보호법이 없었다.
그러나 몰래 도청하고 녹음한 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었기에 어떻게든 처벌이 필요했고 당시 법률로는 주거침입죄로 의율했다. (이 사건의 주거침입죄를 인정한 판례는, 2023년에 와서 주거침입죄로 보는 것이 알맞지 않다는 대법원의 새로운 판단이 내려졌다.)

이 사건을 통해 불법 도·감청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공감을 얻어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 통빈비밀보호법 제3조 】

①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 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과거에는 정·재계 및 군사적인 차원의 불법 도·감청 사건이 주를 이루었다면 전자기기의 발달로 인해 근래에는 일반인들 간의 불법 녹음에 대한 다툼이 빈번하다.

금전 거래에서 증거 확보 목적 또는 이혼을 대비하며 배우자의 흠결을 확인하려는 등의 이유로 사인 간의 통신비밀보호법에 관한 다툼이 잦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벌금형 없이 최소 징역 1년부터

과거 정치적인 문제로 큰 반향을 불러온 배경 탓인지, 통신비밀보호법의 처벌은 벌금형 없이 곧바로 징역형부터 시작한다. (보통의 다른 형벌에 벌금형이 포함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벌칙) 】

① 다음 각 혹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2019년 대전 서구에서 이혼을 앞두고 배우자와 반목하던 아내가 남편 몰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두었다. 배우자의 불륜 혐의를 입증하려는 의도였다.

결국 당사자 몰래 불법 녹음을 시도한 행위는 발각된 뒤 소송까지 이어졌고 대전고등법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1심에서는 기소된 내용에 대해 선고유예를 했다.)

그럼에도 녹음은 무엇보다 강력한 증거 수단이기에

차용증, 공증 등 이런 서류는 강력한 증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돈을 빌리며, 빌려주며 서류 한 장 쓰자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는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어렵다.)
동영상을 촬영하면 좋겠지만 상대방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녹음은 아직까지 대체 불가한 가장 강력한 증거 수단이다. 문제는 위와 같이 통신비밀보호법이라는 강력한 법적 처벌이 염려된다는 점이다.
조금만 자세히 알아보면 위법하지 않게 효과적으로 녹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녹음한 대화에 본인의 음성이 있는 경우라면 위법하다고 보지 않는다.
즉 내가 대화 당사자라면 그 대화 내용을 녹음할 때 상대의 동의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는 다수의 대화 상황에서도 유효하다.
내가 그 대화를 나누는 일원이라면 내 대화와 같이 여러 명의 음성을 녹음하더라도 위법하지 않다.

전화 통화 중 녹음 버튼을 누르는 손


이는 전화 통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통화하는 사람의 상대방이라면, 그 전화 통화 역시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녹음할 수 있다. (2008도1237 판례 참고)

다만, 녹음한 내용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거나 예상되는 범죄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 외 제 3자에게 제공하거나 무단 공개로 녹음 대상자가 사생활 침해 및 명예 훼손 등의 피해가 발생하면 민사상 손해 배상 책임이 따를 수 있음을 주의한다. (여기저기 공개하지 말고 필요한 용도 내 법적 다툼의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문제가 없다.)

아이 가방에 비밀 녹음기 넣어 교육 기관에 등원하는 것은

2~3년 전 유행이라도 하듯 여기저기서 보육 기관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건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이에 부모들은 어린아이의 가방이나 옷에 비밀스레 녹음기를 딸려 보냈다. 그 녹음기를 통해 상대에 대한 불신이 확신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자주 보도되었다.
이처럼 비밀스러운 녹음이 범죄 피해자를 밝히는 유일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유명 웹툰 작가가 장애가 있는 자녀의 가방에 녹음기를 몰래 넣어 등교시킨 것이 화제가 되었다. (정확하게는 그 방법으로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한 것이 이슈가 되었다. 덕분에 그 교사의 행동이 아동 학대가 맞는지를 두고 세상이 떠들썩하다.)

포스팅에서 다룬 것처럼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타인 간의 대화를 동의 없이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다.
백번 양보해서 자녀의 동의를 구했더라도 상대 교사에 대한 동의를 구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일방의 동의를 구한 녹음 역시 불법이다.

하지만 2017년 대법원에서 ‘효과적인 형사소추 관점에서 진실 발견이라는 공익적인 가치와 개인의 인격적 이익 등 보호 이익을 비교해 그 허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예외에 대한 표현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2020년에도 아동학대 사건에서 학부모가 교사의 발언을 몰래 녹음했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한 바 있다.
이것은 불법 녹음이라는 일반적으로는 위법한 행위가 불가피하고 공익성을 담보할 때는 예외로 불법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아이가 어릴수록, 장애가 있다면 더더욱, 의사 표현 능력이 미숙한 아이 대신 부모를 대화 당사자로 동일시 한다는 견해로)

그러나 이런 예외에는 엄격한 판단의 잣대가 드리운다. (예로 아이의 연령, 지능 수준, 평소 학대를 의심할 정황, 녹음의 동기 등 여러 고려 요소를 검토해서.)
때문에 예외를 근거로, 단편 일률적인 불법 녹음이 자행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적으로 염려되는 부분이다.)

다만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녹음이 필요한 상황을 맞닥뜨린다. 녹음은 모르면 자칫 불법이 되나 알고 있으면 무기로 쓸 수 있다.